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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색 전광이 세 번째로 명멸했다. 스타토토사이트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은데,아마 착각은 아닐 것이다.
한편 어찌 된 영문인지 경계차원이 무너지는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롤토토사이트 역시 불길한 징조임은 자명하다.
“……돌아버리겠네, 진짜.”
뒤늦게 목덜미가 서늘해진다.
나는 판단을 내리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곧장 행동에 나섰다. 차원문의 뒷면으로 팔을 집어넣은 것.
기이잉-
회백색 젤리처럼 탱글거리는 표면이 기이한 금속성과 함께 팔뚝을 집어삼켰다.
학생과 병사, 기사와 마법사들이 그리운 녹음을 향해 허겁지겁 롤베팅 던져넣는 앞면과 달리, 그 반대편은 너른 그림자를 드리운 채 변신 이전의 색상과 질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다, 당신.”
떨리는 목소리에 돌아보니, 유프리아가 멍청한 얼굴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선생님, 루도 선생님 맞아요? 그 모습은 대체-”
난 그녀와 그 발치에 쓰러져 있는 흑요정을 번갈아 살피고는 황당함에 롤배팅 고함을 질렀다.
“미치겠네, 왜 아직도 여깄어요? 얼른 나가라니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제대로 설명이나 해주고-”
“설명? 지금 상황에 그딴 게 중요합니까?”
“아니, 그럼, 저 수상쩍은 포털에 넙죽 들어가라고요?”
“네! 다른 사람들은 잘들 들어가고 있잖습니까!”
“그야 저들은 포털을 연 게 당신이라는 걸 모르니까!”
“이런 제길-”
지금 중요한 건 유프리아가 아니었으므로, 난 그녀를 상대하는 스타베팅 빠르게 차원핵을 조작했다.
경계차원의 붕괴를 다시금 가속해 시시각각 다가오는 검보라빛 벼락을 공간째로 지워 버릴 요량이었다.
우르르르-
경계차원이 내 의지에 반응했다. 공간 자체가 비틀리듯 하늘이 찢어지고 롤드컵토토 뒤집히며 차원 곳곳에 시꺼먼 틈이 불거졌다.
“윽,”
하지만 온전히 내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비틀림의 범위가 반경 수백 미터에 불과했던 것이다.
차원핵에서 전해진 인지를 통해 확실히 알아챌 수 있었다. 해당 범위 바깥은 더 이상 내 롤토토 먹히지 않으며, 그 범위마저 점점 좁아지고 있음을.
그나마 내가 일으킨 격변의 여파로 자색 번개가 다가오는 속도가 스타토토 늦춰지긴 했지만, 완전히 멈춰 세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머, 멈춰!”
챙!
두 눈이 혼란과 경계로 가득하던 유프리아가 돌연 나를 향해 칼을 겨누었다. 마법이 깃든 ‘헤펠손의 검’이 검푸른 빛을 흘렸다.
“거기서 손 떼.”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손 떼라고 했을 텐데.”
애써 냉정한 모습을 보이려 애쓰고 있었지만, 눈빛과 칼끝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정확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진 몰라도, 내 급변한 외모나 심상찮은 상황 전개에 의심을 품은 눈치였다.
“넌 누구지?”
내 추측을 증명하듯,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추궁해 왔다.
“흑요정인가? 아니면 도플갱어? 언제부터 선생님의 탈을 쓰고 있었던 거야? 홀덤사이트 선생님은 어디에 있고?”
“제기랄, 유프리아 님. 지금 이럴 때가-”
“대답, 해!”
쩌렁, 사나운 기합과 동시에 유프리아가 쇄도해 왔다. 차원핵에 손을 담그고 있던 나는 한 온라인홀덤 칼을 들 수밖에 없었다.
까강-
유프리아는 이를 노려 간결하고 빠른 참격으로 내 검을 옆으로 치워 버렸다. 그리고 감탄할 만큼 날랜 몸놀림이 이어졌다.
훙.
턱을 노리고 솟구치는 발차기에 난 반사적으로 허리를 젖히며 마주 발을 내뻗었다. 홀덤사이트 유프리아의 복부에 처박히기 직전, 그녀의 손 어림이 붉게 빛났다.
“엇,”
발이 허공을 갈랐다. 유프리아가 ‘샛길 걸음의 반지’를 발동해 차원 틈새로 몸을 숨긴 것. 그녀는 깜빡이는 점멸과 온라인홀덤 발차기하던 기세 그대로 회전하여 칼을 쳐올렸다.
“흐읍!”
마법을 머금은 명검과 초인의 신체 능력 그리고 빼어낸 기예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일격이다. 얼른 칼을 고쳐들며 방어 자세를 취했으나, 내 검이 아무리 양품이라 한들 버텨낼 리 만무했다.
쓰칵.
가뜩이나 여기저기 이가 나가 있던 칼날은 별다른 저항도 없이, 마치 나무토막처럼 깔끔하게 잘려 버렸다.
“……오.”
나는 급박한 상황도, 울대를 겨누는 칼날의 존재도 잊고 순수하게 감탄하고 말았다.
망설임 없는 기습. 눈을 현혹하는 발차기. 가진 수단을 모두 활용해 상대의 약점을 찌르는 마음가짐까지.
“훌륭합니다. ‘오고세 류’의 정수를 터득하셨군요.”
오고세는 천한 이민족 용병 출신임에도 미테르게란트 제국의 수호경 자리까지 올랐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한마디로 흙수저 소드마스터인 것.
그리고 오고세의 기술은 금수저의 손에 들어갔을 때 더 빛을 발했다. 하기야 가지고 있는 걸 모조리 퍼붓는 기술이라고 하면, 거지보다 부자 쪽이 유리한 건 당연하지 않겠나.
자연스레 내보인 흐뭇함이 당혹스러웠던 걸까, 유프리아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너, 대체 정체가 뭐야. 뭐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 거냐고.”
“더 칭찬을 해드리고 싶지만…….”
나는 반 토막이 된 칼을 놓으며 차원문 쪽을 슬쩍 돌아보았다.
“타이밍이 조금 안 좋군요.”
토벌대는 대부분 탈출한 듯했다.
하지만 아직도 스물 남짓의 대원들이 남아 있었고, 차원의 원주인이 가까워짐에 따라 내 통제력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키이이이-
“쯧.”
이윽고 차원문은 내 의지를 거스르고 쪼그라들더니 녹아내리듯 사라져 버렸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다. 팔뚝으로 전해지는 열감을 통해 차원핵이 차원인장에 흡수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약간의 마력을 밀어넣어 봤지만 낮은 금속성과 약한 파장을 내뿜을 뿐, 차원문은 열릴 기미가 없었다.
여차하면 엘렌만 데리고 몸을 뺄 생각이었는데…… 글렀구만.
생기 넘치는 중간계의 공기를 뿜어내던 차원문이 자취를 감추자, 붕괴마저 완전히 멈춘 경계차원은 다시금 불길한 적막에 휩싸였다.
“포, 포털이.”
“맙소사, 주여.”
당연하지만, 남은 대원들은 대번에 난리가 났다. 미처 차원문을 넘지 못한 건 고작 스물 남짓. 소수인 만큼 그들이 느끼는 혼란과 공포는 더욱 심대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개중 절반가량은 내 부하였다.
아까부터 유프리아를 향해 눈을 번뜩이고 있는 엘렌을 중심으로 콜과 스티드먼, 칼아인 등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얼추 상황을 눈치챈 듯 주변을 경계하는 한편 내 쪽을 연신 곁눈질했다. 무사히 차원문을 넘어간 건 카리시·루에시 자매의 감시를 맡은 시모스와 틸로리아뿐인 듯하다.
나머지도 꽤 쓸 만한 전력이었다.
차원문 옆에서 부대의 탈출을 감독하던 가윈과 오스를 비롯한 청년기사 대여섯에 아크라덴 남작의 가신기사와 수렵병이 또 대여섯이었다.
“별동대 누구 없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루도 선생, 루도 선생! 어디 계시오!”
그제야 주변의 시선이 이쪽으로 모여들었다. 나와 유프리아의 기이한 대치를 본 이들의 표정이 한층 더 엉망이 되었다.
“유프리아 님?”
남은 자들 중 가장 거슬리는 상대-성당기사 이푸스 경이 천천히 다가오며 질문했다.
“그자는 누굽니까?”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내게 칼을 들이대고 있던 유프리아가 얼른 대답했다.
“방금 전까지 루도 선생의 모습을 하고 있던 놈이요.”
“루도 선생, 말입니까?”
“네. 차원핵을 손에 넣자마자 본모습을 드러내더군요.”
“허.”
이푸스 경은 내 얼굴을 살피더니 미간을 좁혔다. 의아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좀전의 ‘루도 선생’과 달라진 점이라곤 머리칼과 눈의 색깔 그리고 몸집뿐이니까. 그것만으로도 분위기가 충분히 달라졌겠으나 아예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닐 터다.
썩 골치 아픈 상황이었지만, 당장은 이쪽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푸스 경이 무어라 추궁을 하려던 차, 마침내 놈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비로소 알겠다.”
낮고, 느릿하고, 어딘가 어색하게 들리는 그 밀라놀어에 모든 게 멈추었다. 스멀스멀 내리깔리는 음성이 모두의 전신을 옭아매는 것만 같았다.
“너였구나, 자하크의 후예야.”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지독한 마기와 그로 인한 압박감 때문에 그 작은 동작마저 힘겹게 느껴졌다.
한 인영이 아무 기척도 없이, 마치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허공을 부유하고 있다.
장대한 체구, 깊은 어둠을 두른 판금 갑주, 자줏빛 수증기를 피워올리는 장창, 투구 틈으로 번쩍거리는 보라색 안광.
“아킬렘누르.”
놈은 투구를 통해 웅웅대는 진동음을 내더니 천천히 지상에 내려섰다.
“너였구나, 너였어.”
몇 년 전에 봤던 것과 정확히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 존재감은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내 감각이 발달한 탓일까, 아니면 저 놈이 더욱 강해진 탓일까……. 뭐, 아마 둘 다겠지.
“귀찮은 사냥개를 보냈을 때 눈치를 챘어야 하건만.”
“사냥개?”
“모르는 척할 셈이냐?”
“……모른 척이고 자시고,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좋도록 해라. 그리 중한 일도 아니니.”
나는 놈에게 대답을 하면서도 천천히, 그리고 은밀히 혈기를 그러모았다.
물론 마법의 대가인 암흑기사 앞에서 마력을 운용하는 건 타짜를 상대로 밑장을 빼는 것만큼 무모한 짓거리다. 하지만 그렇다고 얌전히 목을 내밀어줄 수도 없다. 혈류를 타고 흐르는 마력까지 꿰뚫어 보지는 못하겠지, 그렇게 기대해 볼 따름이다.
“변했구나. 비린내가 아주 진해졌어. 잘못 접붙인 탓에 넋을 잃은 잡종이라 여겼건만…….”
석상처럼 굳어버린 자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아킬렘누르는 중무장한 대원들 사이를 태연히 거닐었다. 놈은 암흑계에서도 최고위 서열에 속하는 강자였고, 그에 어울리는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강대한 악마가 곁을 스치고 지나가자 대원들은 눈알만 간신히 굴리면서도 당혹, 경악, 공포 따위의 감정을 충분히 드러내었다.
“이제는 보인다.”
철컥거리는 걸음마다 숨 막히는 마기가 엄습해 온다. 일렁이는 안광은 오직 나를 향해 있었지만, 암흑기사의 마력은 시선과 상관없이 모두를 짓누르고 있었다.
압도적인 힘. 본신의 마기도 마기지만, 이 경계차원을 채운 온갖 종류의 혼탁한 마력이 놈에게 온전히 집중된 탓이다.
“발아르, 그 늙은 것이 얕은 수작을 부린 게로구나.”
마력 봉인이 풀려 전력을 회복한 나조차 지척으로 다가온 아킬렘누르 앞에서는 힘겹게 입술을 달싹거리는 게 고작일 정도였다.
“어찌 이리 어리석단 말인가. 옛 지위야 얌전히 꿈속을 노닐기만 해도 절로 회복될 것을, 쓸데없이 나서 화를 부르다니.”
“……이 찐따 같은 새끼가, 혼자서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또다시 놈의 투구가 웅웅 진동했다. 웃고 있는 것이다. 암흑기사의 웃음은 시귀의 고함이나 밴시의 비명보다도 무겁고 음험했다.
콱.
“게헥,”
다음 순간, 발밑에서 검보라빛 사슬이 한줄기 튀어나와 목을 휘감았다. 마기로 빚어낸 사슬은 제대로 발버둥을 쳐볼 틈도 없이 나를 우악스럽게 잡아당겼다. 내게 칼을 겨눈 자세 그대로 몸이 굳은 유프리아는 거칠게 튕겨 나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한낱 미물 주제에 혀 놀림이 방자하다. 죽음이 두렵지 않으냐?”
“그르윽,”
이 미친놈이, 말도 못 하게 해놓고 질문은 왜 하고 있어?
마기의 사슬을 조종해 눈높이를 맞춘 암흑기사는, 내 눈빛에 흥이 난 듯 즐거운 투로 말을 이었다.
“대업을 방해한 벼룩들 중 첫째로 잡아들인 것이 바로 너, 두 뱀의 후예로다. 이는 마땅히 기릴 만한 승리이니 너를 가져 전리품으로 삼아야겠다.”
……네?
가져요? 저를요? 왜요?
내 눈이 동그래지거나 말거나, 아킬렘누르의 말은 이어졌다.
“명하노니, 너는 순한 종복이 되어 충의로 나를 섬기라.”
그건 평범한 말이 아니었다. 명령이고 암시였으며, 또한 예언이고 주문이었다.
“참된 빛의 주인께서 오시는 날, 나의 깃발을 높이 들고 은혜와 영광을 노래하라.”
“어.”
……뭐지.
눈앞이 흐릿하다.
주변이 점점 아득해진다…….
“흉참한 자하크와 우둔한 발아르의 죄를 씻으라. 개심한 너는 영원한 이름을 얻고, 염화한 가문은 비할 바 없이 번성하리라.”
“……으음.”
아킬렘누르의 품은 겉보기와 달리 편안했다. 갓 빨래한 이불을 깐 침대처럼 푹신하고 포근했다. 지금껏 겪어 본 적 없는 아늑함에 육신의 피로도, 정신의 예리함도 녹아내린다.
그렇게 잠들기 직전.
“으,”
오른 손목에서 따끔한 고통이 느껴졌다.
뱀이다. 뱀의 짓이다. 팔찌의 형태를 하고 있던 민무늬 뱀이 본모습을 되찾더니 손목을 콱 깨문 것이다.
츠츠츠-
작은 뱀은 코뿔소의 가죽보다도 질긴 피부를 너무나 쉽게 꿰뚫고 피 몇 방울을 빨아들였다. 그리고 손목을 휘감듯이 타고 올라 손아귀로 파고들었다.
쩌엉.
영롱한 붉은빛.
그 감탄할 만큼 아름다운 색채가 날카롭게 돋아난 순간, 난 마치 이날만을 기다려 온 사람처럼 그것을 쥐었다.
그리고 내질렀다.
“그악!”
비명. 본능에 이어 육신과 정신이 선명히 깨어난다. 나는 곧장 손에 쥔 자루를 힘주어 비틀었다.
“꺼, 져, 이 개새끼야!”
쾅!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던 아킬렘누르는 전력을 다해 걷어찬 발길질에 가슴팍을 얻어맞고 뒷걸음질을 쳤다.
직후 놈의 어깨에 깊숙이 박혀 있던 칼날을 세차게 그어 올렸다.
짜르릉.
오랜만에 빛을 보는 게 기쁜 걸까? 허물을 벗은 검, 흐룬팅은 마치 웃는 것처럼 맑은 소리를 내었다. 칼날이 솟구치며 찬란한 적색 광채가 터지고, 한발 늦게 육중한 팔이 시꺼먼 연기를 토하며 바닥에 떨어졌다.
“미천한, 잡종이!”
그리워하던 검을 다시 쥔 반가움도 잠시, 귀청이 떨어질 듯한 노성과 함께 마창(魔槍)이 쇄도했다.
카앙-!
흐룬팅을 휘둘러 자줏빛 수증기를 흩뿌리는 장창을 쳐내는 한편, 목을 조이던 마기의 사슬을 단숨에 끊어버렸다. 이윽고 땅에 발을 딛자마자 곧바로 몸을 던졌다.
챠르르륵.
허겁지겁 바닥을 구르는 사이 검붉은 비늘이 전신을 뒤덮었다. 혈기를 끌어올려 ‘철혈갑주’를 전개한 것이다.
“Anbul!”
아니나 다를까 아킬렘누르의 망토 안쪽, 꿈틀대는 어둠 속에서 시꺼먼 가시가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파카카캉!
가시 하나하나는 끽해야 손바닥만 한 크기였지만 거기 담긴 마력과 퍼붓는 양을 감안하면 두꺼운 강철판도 순식간에 걸레짝으로 만들어 버릴 듯했다. 사실상 중기관총 난사에 준하는 맹렬한 공격이다.
“그으윽, 씹-”
내가 정신없이 몸을 던지고 구르며 무수한 가시들을 피하거나 철혈갑주로 받아내자, 암흑기사는 사나운 비웃음을 흘리며 장창을 휘둘렀다.
“벌레 같은 놈. 그래, 어디 한번 계속 굴러봐라!”
허공을 그은 창날에 공간이 종잇장처럼 잘렸다. 놈은 그 틈새로 창을 쑥 밀어 넣었다.
“윽?”
등골이 오싹한 기분에 얼른 옆을 돌아본 순간, 텅 빈 공중에서 예리한 창끝이 튀어나왔다.
카가각-
반쯤 엎드린 어정쩡한 자세로 창을 가까스로 막아냈지만 가시 세례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얼른 몸을 날리려던 차 쏟아지는 가시가 한데로 집중되며 등짝을 거칠게 후려쳤다.
“커헉!”
깨진 비늘을 우수수 흩뿌리며 거세게 땅에 처박힌 내게 자비 없는 후속타가 꽂혔다. 잘린 팔을 덩어리진 연기의 형태로 수복한 암흑기사가 나를 향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k’zork dan!”
이해할 수 없는 주문에 이어 기괴한 금속음이 사방을 채웠다.
지이이이-
동시에 나를 중심으로 공간 자체가 급격히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끄어, 헉-”
“재밌군.”
거대한 바윗돌에 전신이 짓눌리는 것 같은 충격과 압박감. 끔찍한 고통에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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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걸음이 점점 가까워진다.
그에 맞서 몸을 일으키기는커녕 고개도 들 수 없었다. 핀을 꽂은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게 전부였다.
“허나 역시 어리석구나. 감히 나에게, 그것도 내가 소유한 차원에서 대적하려 들다니. 중간계를 통틀어도 보기 드물 만용이로다.”
지척에 이른 아킬렘누르가 마창을 들어 올리는 것을 느끼며, 억지로 비웃음을 흘렸다.
“흐, 좆 까는 소리하네.”
“뭐라?”
“좆 까는 소리한다고. 여기가 네놈 소유라니.”
난 잔뜩 끌어올린 혈기를 팔뚝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압력이 줄어든 틈을 타 아킬렘누르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놈의 안광이 크게 일렁였다.
“어찌.”
“주인 바뀐 지 꽤 됐거든.”
차원인장이 빛을 뿜었다.
